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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심사...

[스크랩] 김연아의 소치 올림픽 출전 이해를 위한 3개 키워드

김연아 선수의 경쟁대회 복귀(return to the competitive skating) 기자회견 영상을 보며 많은 분들이 복잡한 감정을 가졌을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팬이라면 더더욱 다시 대회에 나가 또 한번 압도적인 승리로 김연아 선수를 애써 폄하하려는 이해 불가능한 사람들의 입을 닫게 해 주었으면 하고 느끼면서도 그러기 위해 건너야 할 강의 높이와 격랑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기에 다시 그 길을 떠나겠다고 다짐하는 그녀에게서 말리고 싶지만 차마 말릴 수 없는 이중적인 안타까움과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저 뿐 아니라 아마 많은 분들이 지난번 고소 취하 인터뷰 때 '복귀 결정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줄 압니다. 저와 비밀 댓글로 소통하셨던 분들에게는 제가 51대 49로 복귀...라고 전해드리기도 했는데 지난 2년의 세계 피겨를 경험하고 느껴 온 분들이라면 이런 복귀 결정에 반가움을 또 느끼면서도 역시 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가움' 부분은 한국 팬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피겨 팬(김연아 개인의 팬이 아니더라도)이 다 느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외국인과 한국인의 다른 점은 아마 '안타까움' 부분의 강도겠지요. 외국인들이 보는 김연아의 시선은 아무래도 우리와 같은 감정의 공통분모를 갖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어떤 언론은 지난 피겨 역사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복귀 사례를 들어 주로 '2연패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오늘 저는 똑같이 복귀했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사례를 이야기하되 독자들이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를 것이라 예상해 봅니다.


'2연패'라는 단순 목표로 시선을 고정하고 보면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가 더 많습니다. 2차대전 이후의 피겨는 그 이전의 피겨에 비해 경쟁의 강도나 기술적 난이도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데 그 단순한 관점에서 번다면 카타리나 비트는 성공(1988 2연패)과 실패(1994 7위)를 경험했고 남자는 딕 버튼(48,52)은 성공했으나 1994년에 복귀하려 했던 페뜨렝코(92 금 94 4위) 브라이언 보이타노(88 금 94 6위)의 실패가 있었지요. 페어에서는 좀 사례가 있고 아이스 댄스도  파샤 그리슉/플라토프의 2연패(94, 98)기록이 있긴 하지만 혼성 경기보다 경쟁이 심한 싱글에서는 특히 사례조차 몇 건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뒤늦게 터키 여행에서 돌아와 기자회견 및 질의 응답 영상을 돌려 본 결과 김연아 선수의 결정이 확고하며 거기에는 이전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 두 개의 키워드와 도무지 사례가 없는 또 다른 키워드 하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아를 이해하는 첫번째 키워드 - 카티아 고르디예바/세르게이 그린코프에게서 본 '무욕과 후회없음'


김연아 선수의 회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일 최고의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이것이 인생에서의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88 올림픽에서 깜찍하면서도 정확한 동작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던 , 그리고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하고 결혼하면서 공전의 인기를 누렸던 고르디예바/그린코프, G&G는 1994년 올림픽에 출전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미 1992 올림픽은 그들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미쉬쿠테노크/드미트리예프가 금메달이었고 그들은 계속 선수 생활을 하는 데 비해 프로 선수로 2년 가량을 보낸 그들이 다시 복귀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카티아의 자서전 Sergei : My Love Story' 에도 나와 있지만 1993년 2월이 되어서야 그들은 출전 자격 복귀신청을 ISU에 내고 그 불멸의 프로그램 월광 소나타를 준비하게 됩니다. 1994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가 참가할 수 있다는 결정은 1992년에 이미 내려져 있었고 흥행을 노린 ISU의 권유도 있었으며 당시 미국에 있던 제가 이해하는 바로 그들의 아이스 쇼 인기는 크리스티 야마구치 이상이었고 그들의 회고 인터뷰에 보면 당시 아이스 쇼 출연료가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거의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움직인 것은 "1988년 올림픽에서의 잔실수"였습니다. 그 1988 올림픽에서 어렸던 카티아는 인터뷰를 하려는 미국/캐나다 언론을 피해 굳은 얼굴로 퇴장해 버립니다. 우승은 했지만 자신도 세르게이도 연습 때 보다 못했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프로 생활을 하면서 새로 체득하고 알게 된 '피겨의 예술성"에 대한 열정이 그들에게 '다시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복귀의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위의 영상처럼 세계 피겨사에 영롱히 빛나는 명품 월광 소나타를 선보이며 pure perfect라는 찬사를 들으며 두번 째 금메달을 갖게 됩니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키워드 '무욕의 열정'이 있습니다. 자서전에 의하면 릴리함메르에 가기 전 그들은 평소에 카티아가 자주 들려 조언을 얻곤 하던 니콜라이 신부를 찾아가는데 거기서 신부님은....


- 나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대회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겠다. 너희도 너희가 다시 출전할 수 있게 된 것과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라. 나는 너희들에게 승리를 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 그것(승리)은 너희가 해야 해. 그리고 너희도 그것을 달라고 기도해선 안된다. 그보다는 '행복하게 스케이팅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아. 너희의 행복과 딸 다리아와 너희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스케이팅한다는 것을 기억하렴.


바로 그것이 김연아 선수의 회견 전문 중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저를 계속 짓눌러왔던 저의 선수생활 목표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힘겨웠던 것이 내 스스로의, 또 국민과 팬들의 높은 기대치와 그에 따른 부담감이 아닐까. 내 스스로가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오직 내 자신만을 위한 피겨연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김연아를 이해하는 두번째 키워드 - 카타리나 비트의 1994 올림픽 -  My Way, My Skating



1994 올림픽에서 카타리나 비트는 7위에 그칩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그녀가 이미 2연패를 해 낸 선수면서 만 28세에 다시 도전하기 때문에요? 아닙니다. 


이 기념비적인 프리 프로그램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은 유명한 반전 음악입니다. 카타리나는 자신에게 첫 올림픽 금메달을 주었던 1984 올림픽의 주최지인  사라예보가 내전에 휩쓸려 폐허가 된 것을 두고 사람들의 탐욕에 대한 경종을 자신의 예술 세계로 표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가했습니다. 이 곡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의 포스트를 참고해 주십시오.


 

비트의 귀환과 낸시, 루첸 1994 올림픽 여싱 #2

 


이미 전세계 최고의 스타였던 카타리나 비트의 입장에서 세번 째 올림픽 금메달은 굳이 없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 28세라는 나이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경력의 오점이 될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고 모두가 그녀의 '피겨 스타를 넘어선 모습'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스포츠 기자들이 이런 스토리를 그 때나 지금이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카타리나 비트의 실패 사례로 기억될 지 몰라도 전세계 피겨 팬과 언론은 그녀를 '피겨를 넘어 선 예술가요 평화의 사도'로 생각했습니다.


 

저의 인터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 외부에 비춰지는 모습 하나하나가 여러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때마다 저는 그 관심에서 조금이라도 한발짝 물러나 있고 싶었습니다.

 

또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몸상태와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고된 훈련을 계속해야 할까, 또 대회에 나가서 행여 실수라도 해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얻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압박감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훈련과정과 대회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 김연아 선수 기자회견 전문 중


사회주의 국가의 유일한 프로 피겨 스타로서 1988/89 시즌에 스타즈 온 아이스와 무려 연간 385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1천5백만 달러)의 기본 계약과 각종 CF, TV 출연을 했던 메가 스타인 그녀는 물론 당시 동독 정부가 그 모든 수입의 85%를 차지한다는 조건이었기에 허락한 것입니다만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상상해 보시라고 숫자를 들이댑니다. 지금 김연아 선수의 수입은 그 가치로 보면 카타리나 비트의 프로 초년병 시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가 올림픽에 자원해 출전한 것은 자신의 예술로 세계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 스스로가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었고 당시 사회주의 동료 국가였던 유고 연방이 분리되고 내전으로 황폐화된 것에 대해 사람들의 욕심과 정치인들의 탐욕을 꾸짖으러 나타났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카타리나 비트 방식이었고 모든 언론은 그것을 그녀의 경기 전에 설명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이번 결정에 대해 김연아 선수가 말하듯 그 부담감을 준 것은...단지 언론과 무지한 삐딱이 뿐 아니라 팬들을 포함한 국민 모두일 지도 모릅니다. 


거기에서 이제 김연아 선수는 "내 것"을 찾고자 합니다.


국민들에게 "승리"를 선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위한 피겨를 하겠다는 뜻이며 이 기자회견 내내 김연아 선수는 그 부담에서 벗어나 "피겨를 하는 것은 이제 나 자신"이라는 표정을 보여 줍니다.


김연아를 이해하는 세번째 키워드 - 팀 코리아의 피겨

 


김연아 선수가 언급했듯이 또 우리가 이미 다 알듯이 김연아 선수가 없는 동안 우리 피겨의 위상은 낮아졌습니다.


김해진, 박소연 선수를 필두로 한 주니어들의 발전은 괄목할 만 하지만 소치 때 세계에서 경쟁하기에는 부족하고 곽민정 선수가 부상 후유증으로 정체하면서 피겨 강대국들의 눈초리는 다시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후배선수들에게 피겨스케이팅과 훈련에 관련된 조언도 해주고 선배로서, 언니로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반대로 후배들의 훈련모습에 자극받기도 하고 때론 피겨스케이팅을 계속해야 하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제 벤쿠버올림픽 금메달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연아로 새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저를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아닌 후배선수들과 똑같은 국가대표 김연아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연아 선수 기자회견 전문 중에서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특별했던 부분이 "태릉에서 계속 훈련"입니다. 저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코치는 누가 좋을까 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헝클어졌습니다. 지금 제 머릿 속에 코치 후보는 그냥 백지입니다.....


질의 응답 중에 잠깐 나오지만 김연아 선수가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6개월 후 혹은 그보다 조금 전'이라는 것은 곧 2013 코리아 내셔널에 김연아 선수가 출전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 11월 경에 있을 랭킹전은 프로그램 제작 및 완성 시간을 보통 4개월을 잡아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어렵다고 보입니다만 2013년 1월 우리 피겨 팬들은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직접 국내에서 4년 여만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부분 역시 우리 후배 선수들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물론 2013 월드 출전을 위해서는 기준 기술 점수 획득을 위해 B-class 대회 하나를 11~12월 경에 한 번 나가야 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1월 내셔널 후 일본에서 열리는 사대륙 대신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독일 또는 오스트리아 대회에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팀 코리아 피겨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월드에서 올림픽 쿼터 몇 장이 아니라 세계적 선수와의 훈련 및 경기 경험입니다. 이제 그냥 언니가 아니라 같이 경쟁하는 언니로 스스로를 낮춰 줌으로써 우리 선수들이 주눅들지 않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김연아 선수가 우리 피겨에 주는 큰 선물이자 자신의 희생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미 김연아 선수에게 "승리"는 최고 가치가 아니며 팬들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는 팀 코리아의 어린 후배들을 지켜보라는 권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김연아 선수는 홀가분하게 소치 올림픽 후, 목표한 바 대로 IOC 선수위원에 2018년에 출마, 평창 올림픽을 곱절로 의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곧 평창 이후의 어린 피겨 세대들에게 주는 꿈이 될 것입니다.


버릇처럼 저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은 읽지 얺습니다.

 

그들이 뭐라 하든 김연아 선수는 자신의 길을 설정했고 그 길로 갑니다.


세상 모두가 그녀를 이해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미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많은 팬들이 있음을 김연아 선수가 알고 있으니까요...여러분이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또 한 사람이 되어주면 됩니다.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김연아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전세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녀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G&G가 그러했고 카타리나 비트가 그러했듯이 그들이 표출한 진심은 전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그 성적이 무엇이냐는 감동의 게이지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2년 후, 아니 정확히 18개월 후,


우리는 그 감동의 진원지가 대한민국 김연아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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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맑은아찌수다방
글쓴이 : 해맑은아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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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결같은 맘으로 연아양을 응원합니다. 얼마나 오랜시간 자신과의 힘든싸움이라는걸 알기때문입니다. 연아양이 아니면 누구도 절대 할 수 없는일....연아양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언제나 연아양를 응원합니다...연아양이 주는 행복에 비하면 아주 빈약한 것이지만...사랑합니다^^